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화분을 들고 베란다로 나가는 분들, 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염소 처리된 수돗물보다 자연에서 내리는 빗물이 식물에 더 좋다는 건 식물을 조금이라도 키워본 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키워보니, 무조건 맞히는 게 능사는 아니더라고요. 빗물의 장점과 주의할 점을 함께 따져봐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도시 빗물, 정말 무조건 좋을까
빗물이 수돗물보다 낫다는 이야기는 일정 부분 근거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사용하는 수돗물은 염소로 소독하기 때문에 일부 그 성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강한 성분이다 보니 일부 민감한 식물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빗물은 이런 소독 성분 없이 자연 상태 그대로 내려오는 물이라는 점에서 좀 더 안심할 수 있죠.
또한 빗물은 칼슘이나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이 거의 없는 물이기 때문에 장기간 사용해도 화분 흙에 불필요한 성분이 쌓이는 걸 줄일 수 있습니다. 실내에서 화분을 오래 키우다 보면 흙 표면이 하얗게 굳어가는 걸 경험해 보셨을 텐데, 그게 바로 수돗물에서 쌓이는 성분입니다. 확실히 제가 직접 겪어보니 수돗물만 쓸 때보다 빗물을 간간이 섞어 사용했을 때 이 현상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빗물이 좋다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 써보니 도시 환경에서는 조건이 좀 다릅니다. 비가 처음 내리기 시작할 때는 대기 중에 있는 오염 물질과 미세먼지가 꽤 포함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비 처음에 맞으면 머리 빠진다"는 우스갯소리가 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식물에게도 이와 비슷한 논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마자 식물을 내놓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비가 내린 뒤 맞히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빗물을 맞힐 때 확인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비가 시작된 지 10~15분 이상 지난 후 내놓는다
- 공장 인근이나 교통량이 많은 지역일수록 더 신중하게 판단한다
- 비를 맞힌 후 잎 표면에 이물질이 남아 있지 않은지 확인한다
- 빗물을 받아 두고 사용할 때는 깨끗한 용기에 담아 빠른 시간 내에 쓴다

과습, 비 한 번에 무너진 제 다육이 이야기
빗물을 맞힐 때 가장 많이 놓치는 부분이 바로 과습입니다. 제가 경험상 이건 정말 뼈아프게 배운 교훈입니다.
저는 한동안 창밖 난간에 다육이 화분들을 꺼내놓고 키웠습니다. 햇빛도 충분히 받고 바람도 잘 통하는 환경이라 식물들이 참 생기 있었습니다. 그러다 장마철이 왔고, 비 예보가 있는 날엔 꼬박꼬박 들여놓았는데, 어느 날 외출 중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습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었더라고요. 뿌리가 썩은 건 아니었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일부러 물을 말리고 있었던 다육이가 물을 잔뜩 머금어 통통하게 부풀더니 며칠 사이에 위로 쑥쑥 웃자라버린 겁니다. 한번 웃자라버리면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오기는 어렵기 때문에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얼마나 예쁘게 잡아가며 키웠는데, 비 한 번에 그렇게 되어버리다니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 일 이후로 저는 선뜻 비를 맞히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다육식물이나 선인장처럼 건조한 환경에서 자라온 식물들은 체내에 수분을 저장하는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 이런 식물들에게 장시간 비를 맞힌다는 건 이미 충분히 물이 있는 댐에 계속 물을 퍼붓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비를 맞힐 때 한 가지, 생각보다 놓치기 쉬운 부분이 또 있습니다. 꽃이 피어 있거나 여린 새잎이 나오고 있는 식물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힘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중력에 의해 가속이 붙은 빗방울의 충격은 여린 꽃잎이나 새순을 쉽게 꺾어버릴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키워보면서 장마철에 꽃대가 꺾인 경험이 여러 번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빗물의 장점을 챙기고 싶다면, 비를 직접 맞히는 것보다 빗물을 받아서 사용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번거롭긴 하지만, 내 식물의 컨디션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기도 합니다.
결국 빗물을 보약처럼 쓰고 싶다면, 식물의 종류와 현재 상태, 날씨 패턴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저도 아직 그 경지까지 가려면 더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만, 적어도 장마철에 무작정 내놓는 일은 다시는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특히 다육이나 선인장을 키우는 분이라면 빗물의 좋은 점보다 과습에 대한 위험성을 먼저 따져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잠깐 맞히고 바로 들이거나, 빗물을 받아두어 천천히 주는 방식으로 해 보신다면 식물도 좋고 마음도 한결 편안할 겁니다.